
디자이너들은 본능적으로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물건의 물질적인 매력을 탐험하는 존재다. 그런 감각이 디자인의 품질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프랑스 디자이너 에르완 부홀렉(Erwan Bouroulle)이 raawii와 함께 선보인 ARBA 의자도 마찬가지다. ARBA는 단순한 선과 균형 잡힌 구성이 돋보이는 의자로, 그 이상의 매력을 담고 있다.
이 의자는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다가가면 그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핑크 시트와 그린 프레임의 세련된 조합, 심플한 공간에 놓인 다크 블루 사이드 테이블과의 완벽한 하모니가 이를 증명한다. 마치 예술과 생활이 공존하는 작은 갤러리 같다고 할까.
지난 6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3daysofdesign’ 전시회에서도 ARBA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관람객들은 전시된 모든 물건을 직접 만지고 경험할 수 있었고, 원한다면 구매까지 가능했다. 이것이 ARBA의 중요한 철학 중 하나다. 디자이너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적 창작물과 시장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의자 이상의 가치: 디자이너의 참여와 소비의 재정의
ARBA 의자는 단순히 판매를 위한 제품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품 제작과 유통에 더 깊이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시장, 갤러리, 스튜디오를 하나로 묶어 새로운 소비 패턴을 창출하는 시도인 셈이다. 전통적인 상점이나 갤러리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제품이 소비되는 방식도 다르게 접근했다.
이 의자는 평평하게 포장되어 배송되며, 사용자 스스로 조립하는 재미도 선사한다. 절제된 곡선과 세심한 균형이 돋보이며, 시각적이면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고민이 담겨 있다. 이런 접근은 단순히 미적 요소를 넘어서, 제품의 제작 과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튜디오에서 탄생한 의자의 진짜 이야기
에르완 부홀렉은 프랑스 시골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이 의자를 만들어냈다. 스튜디오에서 용접하고, 구멍을 뚫고, 바느질하고, 페인트칠을 하며 디자인을 완성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험이었다. “단순한 원칙에서 시작했죠. 빠르게, 가볍게, 직관적으로 작업하려 했습니다.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하면서도 최상의 결과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ARBA는 정제되지 않은, 그러나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목표로 했다. 이런 거친 매력은 오히려 이후 제작 과정에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키가 됐다.

실용성과 예술성의 교차점
ARBA 의자는 2024년 9월부터 세 가지 색상의 베이스로 출시된다. 다크 그린, 라이트 그레이, 번트 오렌지 색상 중 선택할 수 있으며, 다양한 마감 처리와 고급스러운 Kvadrat 직물과 Spoor 가죽을 사용한 맞춤형 옵션도 준비된다. 이러한 디테일은 시각적 만족감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편안함까지 고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