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필은 아마도 인간이 만든 가장 단순하고 완벽한 도구 중 하나일 겁니다. 수백 년간 거의 변하지 않은 형태, 나무 속에 숨겨진 흑연심, 손에 익은 육각형 단면. 익숙하고 조용하게, 우리 곁에 늘 함께해온 물건이죠.
그런데 일본 디자이너 히데오 캄바라(Hideo Kambara)는 이 당연한 구조를 의심합니다. 나무 없이, 심지어 속까지 텅 빈 연필이라니. 처음엔 허무맹랑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제안하는 ‘Hollow Pencil’은 나무 대신 벌집 구조의 종이로 몸체를 대체하면서도, 연필로서의 기능을 거의 온전히 유지합니다.
이 연필은 총 7개의 육각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가운데에는 하나의 흑연심이 자리합니다. 단면의 6칸을 비워냄으로써 전체 재료 사용량을 무려 80% 이상 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이 특유의 유연성 덕분에 손에 쥘 때 미묘한 탄성이 느껴지며, 기존의 딱딱한 나무 연필보다 오히려 더 편안하다는 사용자 피드백도 흥미롭습니다.

때로는 너무 익숙한 것이 우리를 가장 무디게 만듭니다. ‘연필은 그냥 나무로 된 거 아니야?’라는 의심조차 해본 적 없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이 Hollow Pencil이 처음엔 농담 같다가도, 자꾸 눈길이 갑니다. 이처럼 소모의 구조 자체를 다시 짚어보는 디자인은, 작은 물건 하나로도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