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르메스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운드를 재단했다. 프랑스 럭셔리 하우스 에르메스가 공개한 아틀리에 오리종(Ateliers Horizons) 헤드폰의 가격은 무려 15,000달러(한화 약 2천만 원). 대체 이 헤드폰에 어떤 이야기가 담긴 걸까?

기술보다 감도, 기계보다 장인
에르메스는 소니나 보스처럼 기능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이 헤드폰은 명확하게 ‘기능성 오디오’가 아닌 ‘예술적 오브제’로 포지셔닝되어 있다.
디자인은 켈리 백에서 영감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2년에 걸쳐 50여 명의 장인이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대표 컬러는 루주 에이치(Rouge H), 프로이센 블루(Prussian Blue) 등, 에르메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색들이다.
이 제품은 “천 개를 만드는 것보다 완벽한 열 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에르메스의 장인정신에서 출발했다.

에르메스의 ‘소리’란 무엇인가
기술 스펙은 상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오픈 그릴 구조와 평면 자석 드라이버가 탑재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반적인 대중형 제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구성이다.
에르메스는 여기에 ‘Hermès Sound’라는 고유 음색을 개발했다고 전한다. 외부 음장이나 타사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브랜드 자체적으로 소리를 설계한 점이 이례적이다.

터치 대신 버튼, 업그레이드 대신 영속성
Ateliers Horizons는 터치 컨트롤을 과감히 배제하고, 물리 버튼을 고집한다. 이는 단지 ‘복고’가 아니라, 조작감과 내구성을 우선한 선택이다.
블루투스와 유선 연결 모두 지원하며, 별다른 앱이나 커스터마이징 없이 직관적인 사용성을 제공한다. 반면, 경쟁 제품들은 EQ 설정, 멀티 디바이스 연결, 배터리 시간 등을 내세우지만—에르메스는 ‘타임리스 오디오’라는 철학을 추구한다.

오디오의 개념을 바꾸는 럭셔리
이 헤드폰은 보통의 소비재가 아니다. 에르메스가 제안하는 오디오는 하나의 ‘수집품’이며,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다.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나 작업실이 아닌, 컬렉터의 선반 위를 지향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틀리에 오리종은 에르메스가 만드는 ‘소리’다. 그 어떤 브랜드보다 사운드에 진심이면서도, 기술이 아닌 취향과 지위, 취향의 계급을 소리로 표현한다. 당신이 음악을 듣는 방식, 장비를 고르는 기준, 그리고 그것을 착용한 당신의 실루엣까지— 에르메스는 소리를 스타일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