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비전 프로(Vision Pro)와 공간 컴퓨팅 플랫폼을 공개했을 때,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회의론자들까지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화려한 데모와 놀라운 실사용 사례에도 불구하고, 일반 출시 전부터 커다란 장애물을 만났다. 바로 천문학적인 가격이다. 이는 비전OS가 소수의 엘리트들만의 전유물로 남게 만들었다.
물론 애플만이 이 시장을 겨냥하는 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손을 뗐고, 메타는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구글은 다시 한번 이 영역에 발을 들였다. 과거 구글 글래스, 데이드림, AR코어 등으로 실패를 경험한 구글은 이번에 새로운 안드로이드 XR 플랫폼을 발표하며 확장 현실(XR)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 여정에는 하드웨어 파트너들이 함께한다.


구글의 재도전: 안드로이드 XR
구글은 XR 기술에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은 엇갈린 결과를 낳았다. 구글 글래스는 비싼 가격과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실패했고, 카드보드와 데이드림은 저가 전략을 택했지만 품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AR코어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졌다. 하지만 구글 렌즈, 스트리트 뷰, 최근에는 제미니(Gemini) 같은 AR 기반 앱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안드로이드 XR은 구글의 성공과 실패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도전이다. 하드웨어 파트너인 퀄컴과 삼성과 협력하며, 개발자가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익숙한 모바일 앱 생태계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화면 기반 장치에 맞춰진 플랫폼이라는 제한도 가진다.


제미니 AI: 화면의 경계를 넘어
구글은 이번 도전을 제미니 AI 생태계의 일부로 내세우고 있다. 검색, 지메일, 안드로이드 등 모든 구글 서비스에 AI를 도입하고 있는 만큼, XR 플랫폼에 AI를 결합하는 것은 단순한 마케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터치스크린이나 키보드로 한정되지 않은 상호작용 방식을 제공하는 XR 플랫폼은, 구글이 제미니 AI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비전에 부합한다.
안드로이드 XR은 여전히 시각적 요소를 활용하지만, 평면적인 화면에 묶여 있지 않다. 컴퓨터 중심의 앱으로 인해 직사각형 창이 떠다니는 모습은 불가피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이 새롭게 가능해졌다. 제미니 AI는 사용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이해하고 그 의도를 추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똑똑하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대화도 가능해, 마치 아이언맨처럼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삼성 프로젝트 ‘무한’: 애플에 도전하다
XR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뛰어난 하드웨어가 필수다. 개발자는 일반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에서 앱을 만들겠지만, XR 경험은 헤드셋을 착용해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안드로이드 XR은 강력한 헤드셋뿐만 아니라 더 간소한 스마트 글라스에서도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으나, 후자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로선 구글의 강력한 파트너인 삼성만이 관련 하드웨어를 공개한 상태다.
삼성 역시 이 시장에 익숙하다. 과거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기어 VR이나 윈도우 혼합현실 HMD 오디세이를 선보인 경험이 있다. 이번 프로젝트 ‘무한’은 애플 비전 프로를 직접 겨냥한 제품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차별점은 가격이다. 삼성이 구글과 함께 실험적인 제품에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붙이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구글 글래스 실패의 교훈일지도 모른다.

XR 전쟁의 승자는?
결국 안드로이드 XR은 익숙한 앱과 기술을 활용한 확장 현실 경험을 대중에게 제공하려 한다. 애플 비전 프로가 하나의 장치만으로 운영 체제를 선보인 것과 달리, 구글은 다양한 벤더와 디자인을 포용해 더 많은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데모를 보면, 구글과 파트너들은 기술적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애플은 인간 중심의 경험을 고도로 정제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비전 프로의 창 모서리에서조차 실제 그림자 효과를 재현하는 세심함이 그 예다. XR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애플은 이제 강력한 경쟁자가 본격적으로 왕관을 노리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